이제까지 내가 적은
사도바울의 신비주의에 관한
5가지 글은 14의 내용일 뿐이다.
즉, 이 책의 극히 일부분이다.
내용이 내용인지 복잡하고
다소 어려운 용어와
잘 이해되지 않는 문법으로 인해
읽는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던 경험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러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마무리를 통해
사도바울의 신비주의는 끝내려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종말론적 세계관과
전반적인 사도바울의 사상
그리고 슈바이처가
바울의 불후의 유산이라고 말한
"생각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도바울의 사상은 책에 나와있기에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지만
종말론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먼저, 사도바울의 사상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리스도와의 공동이다.
다른 신-신비주의와 같이
무한자와 합일되는,
우리와 같은 사람(유한자)라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됨
즉,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공동이 되는 그리스도-신비주의 이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공동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생각함에 관한 내 생각이다.
생각함이 없이 받아들인다면 고인 물과 같다.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며 믿는 것은 좋지만
이에 대해서 내 상황가 맞게
생각하고 음미할 때
새로운 믿음이 생겨날 것이다
물론, 이로인해 잘못된 해석이나
판단이 생길 수 있다
때문에 이런 "생각함"은
바울의 믿음과 윤리에 안에서
생각하는 "생각함"이어야 할 것이다.
즉, "생각함"이란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의 세계관에 국한되어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계와 세계관은 변화하고 새로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받아들이기만 하는
그리스도 공동체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정체된 종교의 결말은 뻔하다.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 바울의 유산
곧 "생각함"이고 때문에 슈바이처는
바울의 불후의 유산을 "생각함"이라 말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말론적 세계관이다.
구속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아의 도래 안에 존재한다는
복음적-원시 그리스도교적 믿음과
미래적 메시아로서의 예수의 대한 믿음 안에서
도래하는 나라를 끝까지 생각하되
자신이 처했던 시간적 제약성을 뛰어넘어
모든 시대에 대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표현"을
바울은 생각해 내었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의 신비주의는
하나님의 나라와 현재의 미래가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옛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이라 함은
세상이 외적으로 변화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시적으로 도래하여
자신들이 구속받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 뒤에도
그들이 생각했던 세상의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의 신비주의는
그들의 종말론적 세계관이 가져온
문제를 해결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이렇게 종말론을 포기하지 않고
종말론을 넘어섰다.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초기의 구약의 예언들을 봐도
야훼의 날(구약에선 이렇게 표현하고 했다.)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종말이 아니었다.
물론 후대로 가면서
세상의 종말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이는 야훼가 일으키시는 다양한 구원 행동의 하나일 뿐이었다.
사실 종말을 그렇게 생각한 이유도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과 멸시 때문에
하나의 돌파구로서 생각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종말은 신약성서
예수의 선포에 있어서도 엿볼 수 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을 때도
세상의 종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종말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말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구원 행동을
생각하고 기다렸다고 봐야할 것이다.
사실 구약 신약 성서 어느 것 하나만
좁은 시야로 본다면
그리고 "생각함" 없이 들여다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 라거나
"너희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
이라는 구절로 인하여 혼란이 올 수 있다.
때문에 성경이란 것은
어느 성서 하나만 가지고 전체를 파악하기 보다는
전체적이고 큰 범위 안에서
그 원리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래야 바울의 신비주의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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